로버트 드 니로 감독
맷 데이먼, 안젤리나 졸리, 에디 레드메인 출연
1961년 4월, 쿠바사태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
그러나, 더 큰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61년 4월 쿠바 반 혁명군 침공작전에 실패한 미국 정부는 CIA 내부 첩자로 인해 정보가 유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CIA는 내부 첩자를 비밀리에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CIA 초창기부터 첩보 업무를 담당한 베테랑 요원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에게 익명의 녹음 테잎과 흑백사진이 도착한다. 첩자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이 증거물의 정체를 하나씩 밝혀나가면서 윌슨은 자신의 CIA 활동을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명문가 출신의 예일대 학생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은 비밀 서클인 Skull and Bones에 가입하면서 첩보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의 명석하고 냉철한 두뇌, 무엇보다 국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미 정부 비밀요원이 되기에 최적의 요소였던 것. 윌슨은 이 단체에서 만난 클로버(안젤리나 졸리)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가 임신하자 책임감으로 결혼에 이른다.
결혼식 직후 윌슨은 국가의 첩보요원으로 유럽으로 발령, 그곳에서 영국 첩보원들과 교류하며 점차 CIA 요원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나, 그가 최고의 요원이 될수록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 가족조차도 불신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크나큰 희생을 불러오게 되는데…
- 다음 줄거리
이 영화! 실제 CIA의 쿠바 작전 실패... 실화로 만든 영화란다.
첩보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보긴 했는데;;;;;;안 졸고 보긴 했는데;;;;;;;
글쎄...........................................
뭘 마니마니 실을려고 하니까 본래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 영화라고나 할까...
무튼 그냥 soso
p.s 1. 배경은 좀 알 필요가 있을 듯!
p.s 2. 윌슨의 아들 녀석!!!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했더니ㅋㅋㅋㅋㅋㅋㅋㅋ 레미제라블의 마리우스였어 ㄷㄷㄷㄷㄷㄷㄷㄷㄷ 에디 레드메인이래 ㅋㅋㅋㅋ
실존 사건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의 힘
20세기 냉전시대를 통해 21세기를 바라본다!
<굿 셰퍼드>의 주인공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은 1954년부터 1974년까지 CIA 첩보활동을 한 제임스 앤젤톤의 삶에 기초를 둔 캐릭터이다. CIA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재조명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그려내기 위해 실제 인물을 모델로 캐릭터화 한 것이다.
여기에 1962년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위기의 공포로 몰아넣은 쿠바 미사일 사태를 배경으로 하면서 영화의 흥미진진한 사실감은 배가 된다.
CIA의 첩보활동 중 가장 치욕적인 실패로 기록된 피그즈만 사건-쿠바 혁명정부에 대해 미국이 1961년 4월 반혁명군의 침공작전을 계획했으나 완벽하게 실패했던 이 역사적인 사건은 <굿 셰퍼드>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사건을 둘러싼 CIA 와 KGB,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양 첩보전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영화는 더욱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제공한다.
과연 CIA 내부 첩자는 누구일까?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의 이면은 무엇일까? 그 숨막히는 진실이 사실감 넘치는 인물들과 사건으로 그려진 <굿 셰퍼드>는 웰메이드 스릴러의 진수를 선사할 것이다.
【 X-File (Insider) 】
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미국 중앙정보국. 1947년 트루먼 대통령 지시 하에 국가안전보장법에 의하여 설립된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기관이다.
1941년 진주만 사건 이후 미국은 다시는 이와 같은 치욕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해 정보를 체계화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1946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신생 조직 신설을 지시했고, 1947년 미 의회에서 국가안전보장법이 통과되면서 오늘날의 CIA가 탄생한다.
1953년 강력한 반공정책을 표방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국장 덜레스의 활약으로 조직이 확대되기 시작하여 30여 년 동안에 능력•자금•조직면에서 세계 최대의 정보기관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까지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비밀첩보활동을 전개해왔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언론과 의회의 공격대상이 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예산과 인원이 대폭 축소되었다. 특히 1973-1974년에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 CIA 전직 요원이 연루된 것이 밝혀짐에 따라 그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다. 1974년에 ‘정보자유법’이 개정되면서 미국언론기관들의 CIA 내막 폭로가 잇달았고, 그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CIA와의 정보협력을 기피했으며 활동이 부진하게 되었다.
1970년대 칠레와 과테말라 내정에 개입해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친 CIA는 이란에서는 축출당했던 팔레비왕을 재집권시키고 80년대 아프간 반군을 지원하여 소련이 아프간 전쟁을 지속하는 데 회의감이 들게 하는 등 전세계 곳곳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CIA 활동 이면에는 훨씬 더 많은 실패사례가 있는데 그 중 1961년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할 목적으로 수행한 피그스만 공격이 가장 대표적인 실패기록으로 남아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승인하고 케네디 행정부하에서 실행한 이 작전은 1400명의 침공군 중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실패로 끝났고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 크게 실추했음은 물론 CIA에 대한 여론 또한 최악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정보원 신원공개금지법’ 등을 통해 국가기밀 및 CIA 요원의 활동을 보호하고 예산증대, 신규직원채용 등으로 CIA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1984년 의회는 ‘중앙정보국 정보법’을 통과시켜 비밀유지를 강화하고 CIA의 활동을 본격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자료제공 • 국가정보연구회
쿠바 혁명정부와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
전세계적으로 50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유발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국제 질서는 1961년 쿠바에 수립된 혁명정부로 인해 3차 세계대전의 공포에 직면하게 된다.
1959년, 카스트로는 바스티아 정권을 축출하고 혁명정부를 쿠바에 수립하는데 성공, 사회주의혁명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1961년에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르게 되고, 이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던 미국은 1961년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에 의해 카스트로를 제거할 목적으로 침공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미주기구(OAS) 로부터의 쿠바를 축출하는 등 군사 외교적 압력을 가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62년 쿠바는 소련과 ‘쿠바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하고 소련의 미사일 도입을 시도한다. 쿠바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미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중임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며 미국 플로리다에서 불과 7.2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쿠바에 대해 큰 위협을 느낀다. 이에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J.F.케네디는 “소련이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포하고 쿠바에 대해 해상봉쇄조치를 취하며 직접적으로 맞선다. 3차 세계대전 위기라는 긴박감 속에서 소련은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고, 미사일 철거를 이행함과 동시에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선단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사태 위기는 이렇게 해소되었지만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위기에 몰아 넣으며 핵전쟁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Skull and Bones
17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예일대학에 있는 학생들의 비밀 서클. 1832년 윌리암 러셀이 예일대 재학 중 독일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비밀 종교단체를 본떠 만들었다. 당시 예일대학 졸업반 학생들 중 15명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SABS라 불리 우는 장학금을 지급하며 계속하여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들은 매년 15명의 멤버들만을 배출해내며 현재까지 2천명이 넘는 멤버들이 있다. 조직 가입은 졸업반 멤버들이 가장 성적이 우수한 후배들을 지명하여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이루어지며, 가입하게 될 학생들은 그들의 숙소에 몇 일간 합숙하며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게 된다. 또한 예일대 캠퍼스 내 ‘무덤(Tomb)’ 이라고 불리는 클럽 하우스에서 가입식을 갖는다. 이때 신참들은 해골이 그려진 가면을 뒤집어 쓴 선배들에 둘러싸여 벌거벗은 채 돌로 된 관 위에 누워 자신의 성적 편력을 고백하는 의식을 치른다. 졸업후에 멤버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운영하는 회사나 정부기관에 입사하게 되며, 그들은 모두 전통을 이어 후배양성에 힘을 쓴다. 이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는 인맥관계가 가장 큰 역할을 하며, 모두다 후에 큰 출세를 보장받게 된다.
윌리엄 테프트 대통령, 조지 H W 부시 대통령, 그리고 현재 미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이렇게 3명의 대통령이 ‘Skull and Bones’의 멤버였다. 또한 소프트웨어로 세계를 제패한 빌 게이츠의 할아버지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타임지의 설립자 헨리 루스,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윌리엄 도널드슨도 역시 이 조직의 회원. 미국 정부의 요직과 학계를 주름잡는 회원들은 이외에도 한 둘이 아니며 현재 학계, 재계, 정부 요직과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조직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월스트리트가의 금융업를 리드하며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국가사회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CIA 전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정보 기관으로 활동한 첩보기관. 1942년 6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여러 정보수집기관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했다. OSS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중국 마오쩌둥과 베트남의 독립 동맹군을 포함해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점령당한 지역들에서 진행되었던 저항 세력을 도왔으며 독일의 외교관 프릿츠 콜베를 첩보원으로 활동시켰다. 또한 첩보요원을 통해 작전지역에 관한 대외정보 수집, 역선전 역정보 등의 활동을 벌였다. 전시 비밀공작과 비정규전, 조사 및 분석을 임무로 한 OSS 활동은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1945년 종전과 함께 해체했으며 CIA의 전신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역사속에 사라졌다.
KGB (Committee for State Security)
구 소련 시절에 활동한 비밀첩보 조직. 소련이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과 외국인의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설립했다. 1917년 12월 ‘전 러시아 반혁명 태업단속 비상위원회’라는 비밀경찰 기구로 발족하여 전 러시아 비상위원회라는 중앙집권적 행정조직으로 확대되었다. 냉전시대 첩보 및 방첩활동, 보안활동, 감시와 통제등 국가안보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활동을 벌였으며 미국의 CIA와 더불어 치열한 첩보전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KGB는 순수한 군사정보는 담당하지 않으며, 종전 후와 스탈린의 집권 말년에 활동범위는 소련 블록 전체로 확대되었다. 위성국들의 경찰업무 총수역할을 하고 반공주의나 반소 또는 무소속 단체들에 침투하여 이들을 파괴함으로써 위성국들의 엄격한 순응을 강제했다. 세계 최대의 비밀경찰 및 첩보조직으로 그 전문적인 능력을 널리 인정받으며 공산당과 소련 정부 내에서의 그 권력과 영향력은 상당했지만 1991년 해체되었다. - 자료제공 • 국가정보연구회